1910년~1940년 한국의 역사
1910년대의 국외 독립운동
국외 독립운동은 1910년을 전후하여 간도, 만주, 연해주, 중국본토,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 되었다.
우선 간도지방은 "북간도"와 "서간도"로 나눌수 있다.
서간도에서는 1907년 윤치호, 안창호 등에 의해 창설된 "신민회"의 근거지인 "삼원보"를 중심으로 삼원보의 결속을 돈독히 하는 "경학사"로 시작된다. 이후 "경학사"가 확대 개편되어 "부민단"을 형성하고, "부민단"에서 독립군양성을 위한 "신흥학교"를 건립한다. 그리고 이 "신흥학교"가 훗날 무장독립군 장교를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로 확대 개편된다. "부민단"의 확대 개편으로 "한족회"를 결성하고, "한족회"아래에 "서로군정서" 라는 군부대를 두어 "지청천"장군이 이를 통솔하였다.
또한 북간도 "왕청"에 "대종교(단군을 교주로 모시는 나철, 오기호 등이 만든 종교)"신자들을 중심으로 "중광단"이 만들어지고, 그 아래 "김좌진" 장군을 대장으로 하는 "북로군정서"를 편성하여 1920년대 "청산리대첩"을 이끌게 된다. 또한 "용정"에 "서전서숙", "명동학교"를 설립하고 "연길"에 "간민회"를 형성한다. 그리고 "간민회"를 확대 개편하여 "대한국민회"를 결성하고 그 아래 "국민회군(총대장-안무)"을 두어 1920년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해외로 망명한 민족 지도자들은 재외 교민을 대상으로 "애국계몽운동"과 "언론활동"을 전개하며,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그 결과 연해주에서 "신한촌"이 형성되어 한인들의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하였으며, "성명회"와 "권업회"를 통해 한인들의 독립운동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수 있었다. 또한 "한민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이상설" "이동휘"등은 "대한광복군정부" "전로한족중앙총회"를 거쳐 1920년대 "대한국민의회"를 형성한다.
중국 본토에서의 민족운동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뒤 많은 인사들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문(쑨원)"을 비롯한 혁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한.중 유대 강화에 힘썼다. "신규식"선생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친분이 있던 "손문"의 "국민당"정부를 돕게된다. 이후 신규식 선생은 "손문"의 지원을 받아 "동제사"를 결성하고 1918년 "동제사"를 확대 개편한 "신한동제사"를 거쳐 "신한청년당"을 결성하였다. "신한청년당"은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자 "김규식"선생을 대표로 파견하여 외교독립활동을 추진하였다.
이무렵 미주 지역에서는 19c 후반부터 한국인 이민자 수가 증가하게되자 이를 기반으로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 민족운동 단체가 설립되게 된다. 먼저 하와이 "호를룰루"에서 "신민회"가 결성되면서 부터 "흥사단"을 비록한 수만은 단체가 결성되었고, 1907년 여러단체들이 연합하여 하와이에 "한인합성회"를 조직하였다. 미국본토에서도 안창호의 지도로 "샌프란시스코"에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가 설립되었다. 1908년 "전명훈"과 "장인환"이 "스티븐슨"을 암살한 뒤로 미주에서의 활동이 활발해져 미국본토와 하와이의 "한인합성회"와 "공립협회"가 결합하여 "국민회"를 조직하였고 그후 "대동보국회"가 참가하여 단체를 "대한인국민회"로 확돼 개편 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미국본토에 "북미 지방총회", 하와이에 "하와이 지방총회", 멕시코에 "맥시코 지방총회"를 설치 하였고 그후 "시베리아 지방총회"와 "연해주 지방총회"를 산하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중앙총회"를 두고 4개의 지방총회와, 116개의 지방회를 설치 하였다.그리고 "신한민보"를 발간하여 세계의 민족운동 진행상황을 알렸으며, 각지에서 군사단체가 조직되어 군사훈련을 시행하였다. 대표적인 군사단체로 "의용훈련대"와 "청년, 소년병 학원"등이 있으며, 멕시코에서 숭무학교가 설립되어 군사훈련을 실시 하였다.
1910년대 국 내.외의 독립운동은 1920~40년대 무장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35년간 일제치하로 부터의 독립에 기본 배경이 된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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